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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컴의 역설

개요

뉴컴의 역설(Newcomb's paradox)은 미래를 정확히 맞히는 예측자가 개입한 선택 상황에서, 서로 다른 두 가지 합리적 추론이 정반대의 답을 내놓는 사고 실험이다. 1960년대 물리학자 윌리엄 뉴컴(William Newcomb)이 제안하였고, 사회 철학자 로버트 노직이 뉴컴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어 문제 형태로 공개하였다. 이후 수학자이자 대중 저술가인 마틴 가드너가 유명 잡지에 기고하면서 학계 바깥에서도 널리 알려진 문제가 되었다. 상자 두 개 중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라는 단순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결정론과 자유의지, 기대 효용과 지배 원리, 정보 비대칭 문제가 한 자리에서 충돌하는 탓에 아직까지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해답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게임의 설정

문제 자체는 몇 문장으로 끝난다. 다만 그 몇 문장에 걸린 전제 하나가 이후의 모든 논쟁을 만들어 낸다.

규칙

참가자 앞에는 투명한 상자 A와 불투명한 상자 B가 놓여 있다. 상자 A에는 1만 달러(한화 약 1,500만 원)가 들어 있고, 이 사실은 상자가 투명하므로 눈으로 확인된다. 상자 B에는 100만 달러(한화 약 15억 원)가 들어 있거나,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 참가자는 두 상자를 전부 가져가거나, 상자 B만 가져갈 수 있다.

상자 B에 돈을 넣을지 말지는 믿을 만한 점쟁이가 미리 정해 두었다. 점쟁이가 "이 사람은 두 상자를 다 가져갈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상자 B는 비어 있고, "상자 B만 가져갈 것"이라고 예측했다면 상자 B에는 100만 달러가 들어 있다. 참가자가 상자를 가지러 온 시점에 점쟁이는 이미 예측을 마치고 떠났으며, 상자 B의 액수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

선택지에 따른 결과

가능한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선택 B에 돈이 있는 경우 B가 비어 있는 경우 해석
상자 B만 100만 달러 0달러 전부 아니면 전무
두 상자 모두 101만 달러 1만 달러 어느 쪽이든 1만 달러 더 많다

표의 오른쪽 두 열만 보면 두 상자를 모두 가져가는 쪽이 항상 1만 달러 이득이다. 그런데 어느 열이 실현될지를 정하는 것이 바로 참가자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이 표는 곧바로 무너진다. 이 지점이 역설의 출발점이다.

상자 B만 가져간다는 풀이

예언이 100% 정확하다면, 두 상자를 다 가져가는 순간 점성술사는 이를 미리 알고 상자 B를 비워 두었을 것이므로 손에 남는 것은 1만 달러뿐이다. 반대로 상자 B만 가져가면 점성술사는 그 미래를 보고 100만 달러를 넣어 두었을 것이므로 100만 달러를 얻는다. 따라서 상자 B만 가져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풀이를 지지하는 쪽은 '완벽한 미래 예측자'라는 조건이 인과관계를 도치시키고 있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해석한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상자에 얼마를 넣었는지가 원인이고 얼마를 얻는지가 결과다. 그러나 이 조건이 붙는 순간 상자를 가져갈지 말지가 원인이 되고, 상자에 얼마를 넣을지가 결과가 된다. 쉽게 말해 A를 가져갈지 말지 결정한 다음에 B의 액수가 정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보아야 한다는 관점이다.

예언의 절대성에 도전해서는 안 된다

주최자의 예측이 반드시 맞는다는 절대성에 주목하는 접근이다. 두 상자를 다 가져가면서 상자 B에 돈이 들어 있을 확률을 조금이라도 상정하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제시한 '예측 정확도 100%'라는 전제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상자 B만 골랐는데 비어 있는 경우를 상상하는 것도 같다. 그 가정이 성립할 여지가 있다는 말은 문제의 조건이 틀렸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예측의 절대성이 성립하는 한 "B만 골랐는데 돈이 없는 경우"와 "A도 같이 골랐는데 B에 100만 달러가 있는 경우"의 확률은 0이어야 한다. 이는 "B만 골라서 돈이 나왔으면 A도 같이 고르는 게 이익 아닌가"라는 질문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 상황에서 A를 골랐다면 예측의 완전성이 성립하여 B의 돈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예측자는 과학과 논리를 초월하는 존재이므로 확률 계산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계열 주장의 결론이다.

미래를 성립시키기 위한 선택

타임 패러독스 쪽에서 접근하는 시각이다. 참가자가 상자 B만 가져간다는 선택을 해야만 점성술사가 그 미래를 볼 수 있다. 두 상자를 모두 가져가기로 마음먹는다면 점성술사는 애초에 "B만 가져가는 미래"를 볼 수 없으므로 100만 달러를 넣지 않는다. 따라서 더 많은 돈을 얻으려면 본인이 먼저 B만 가져가는 미래를 확정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미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결정론적 관점이다.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무슨 짓을 해도 그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주장을 끝까지 밀고 가면 점성술사는 참가자가 어떤 상자를 고를지뿐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평생의 1분 1초까지 전부 알아맞힐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참가자의 인생 전체를 담은 책을 쓸 수도 있다. 아무리 기상천외한 선택을 해도 점성술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즉, 무엇을 고를지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이미 예측표에 적혀 있는 셈이다.

두 상자를 모두 가져간다는 풀이

점성술사는 이미 예측을 끝내고 떠났고, 참가자가 선택하는 시점에 상자 B의 액수는 확정되어 있다. 상자를 하나 가져가든 둘 다 가져가든 그 액수는 변하지 않는다. 상자 B에 돈이 있다면 101만 달러를 얻고, 없다면 최소한 1만 달러는 얻는다. 어느 경우든 두 상자를 모두 가져가는 쪽이 1만 달러 유리하다.

선택은 상자 B의 내용물을 바꾸지 못한다

점성술사는 상자에 돈을 넣거나 뺀 뒤 그대로 떠났다. 참가자가 상자 A를 함께 가져간다고 해서 상자 B에 있던 돈이 사라지지 않고, 상자 A를 놓고 온다고 해서 없던 돈이 생기지도 않는다. 어차피 선택이 상자 B의 액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면, 상자 A라는 '보너스'이자 '보험'을 굳이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예측은 절대적이지 않다

상당히 현실적인 접근이다. 예측은 미래를 보는 행위일 뿐 미래를 결정하는 행위가 아니며, 현실에 어떠한 물리적 간섭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선택은 단 한 번뿐이다. 예언만 믿고 상자 B만 골랐는데 비어 있었다면, 예언이 반드시 맞는다고 항의해 봤자 도와줄 사람은 없다. 점성술사가 예언이 틀릴 경우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한 적도 없다.

따라서 그런 극단적 손해의 가능성을 남기느니 상자 A라도 챙기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두 상자를 다 골랐는데 상자 B가 비어 있었다면, 얻은 1만 달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없애는 데 지불한 비용이라고 보면 된다. 반대로 상자 B만 골라서 돈이 있었다면, 상자 A까지 같이 골랐을 때 더 이득이었을 것이라는 반문도 성립한다.

역설로 남은 이유

흥미로운 점은 어느 쪽을 고르든 선택한 사람들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한다는 것이다. 두 풀이 모두 논리적으로 납득 가능한데 결론은 정반대라는 점, 그리고 자신이 고르지 않은 답이 왜 틀렸는지를 증명하라는 단계에 이르면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점이 이 문제를 역설로 만든다. 이 문제만 다룬 논문도 다수 나와 있다.

문제를 대중화시킨 노직은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는 더없이 명확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반은 한쪽으로, 나머지 반은 다른 편의 결정을 내린 뒤 양쪽 모두 상대방의 결정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지적 수준이 높은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결과가 거의 반반으로 나와,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대 효용과 지배 원리

상자 B만 가져간다는 해답은 기대 효용 가설(Expected utility hypothesis)에, 두 상자를 모두 가져간다는 해답은 지배 원리(Dominance principle)에 기반한 것이므로, 어느 이론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는 설명이 있다.1

문제에 주어진 금액만으로 기대값을 정리해 보면 두 원리의 충돌이 눈에 보인다. 예측이 맞을 확률을 pp라 하고 금액 단위를 만 달러로 두면, 각 선택의 기대값 EE는 다음과 같다.

EB만=100p,E둘 다=p+101(1p)E_{\text{B만}} = 100p, \qquad E_{\text{둘 다}} = p + 101(1-p)

여기서 pp는 점성술사의 예측 적중률이고, 앞의 식은 상자 B만 가져갈 때, 뒤의 식은 두 상자를 모두 가져갈 때의 기대 금액이다. 두 값이 같아지는 지점은 p=0.505p = 0.505, 즉 약 50.5%다. 쉽게 말해 예측이 동전 던지기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정확하다면 기대값 계산은 상자 B만 가져가라고 답하고, 그보다 못하다면 둘 다 가져가라고 답한다는 뜻이다. 반면 지배 원리는 pp 값을 아예 보지 않고, 어떤 경우에든 1만 달러가 더 남는다는 사실만 본다.

다만 앞의 풀이 문단처럼 인과 도치로 볼 경우에는 지배 원리를 신뢰하더라도 상자 B만 고르는 선택이 가능하다. 인과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선택지를 임의로 분류하면, 도박은 무조건 배율이 높은 쪽에 걸어야 한다는 식의 비직관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

게임 이론이나 타임 패러독스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설명도 있으나, 아직까지 모두를 납득시킬 만한 분명한 설명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48÷2(9+3) 문제처럼 문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제3의 해답까지 등장하여 나름의 세력을 형성했다. 이는 논점을 회피하는 답이 아니라, 문제의 전제 안에 모순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진지한 주장에 해당한다.

전망이론의 관점

이 문제는 대니얼 카너먼과 에이머스 트버스키(Amos Tversky)의 전망이론(prospect theory)과 결합해 더 깊이 볼 수도 있다. 핵심은 상자에 든 금액의 크기와 시행 횟수를 바꾸면 사람들의 선택이 체계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변형 조건 상자 A 상자 B 유리해지는 쪽
노직의 원안 1만 달러 100만 달러 견해가 갈린다
격차 확대 1달러 10억 달러 B만 (위험 회피)
소액 반복 1달러 2달러 둘 다 (큰 수의 법칙)

금액의 격차를 벌릴 경우

상자 A에 1달러(한화 약 1,300원), 상자 B에 10억 달러(한화 약 1조 3천억 원)가 들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상자 B만 고르는 쪽은 10억 달러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 반면, 두 상자를 고르는 쪽이 추가로 얻는 것은 고작 1달러다. 1달러를 더 얻기 위해 10억 달러를 잃을 수도 있는 모험을 감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전망 이론의 위험 회피(risk-aversion) 경향에 따라 상자 B만 고르는 사람이 늘어난다.

시행을 반복할 경우

이번에는 상자 A에 1달러, 상자 B에 2달러(한화 약 2,600원)가 들어 있고 선택을 여러 번 반복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상자 B만 고르는 쪽은 2달러 곱하기 횟수를 기대할 수 있을 뿐이며, 실제로 얻는 액수는 그보다 낮은 미지수다. 반면 두 상자를 고르는 쪽은 1달러 곱하기 횟수를 우선 확보하고 거기에 같은 금액을 추가로 기대한다. 횟수가 충분히 커지면 큰 수의 법칙에 따라 두 상자를 고르는 쪽이 유리해진다.

현세와 내세의 비유

이런 구조 덕분에 이 문제는 '결정론 대 자유의지론'뿐 아니라 '심판 대 영겁 윤회'라는 축에서도 다뤄질 수 있다. 상자 A를 현세에, 상자 B를 내세의 천국에 대응시키면, 현세 한 번뿐인지 내세가 존재하는지, 내세가 있더라도 한 번뿐인지 윤회가 반복되는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진다는 구도가 된다. 다만 특정 종교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종교가 사후세계나 인과율만을 따지지는 않기 때문에, 이 비유가 종교 간 대립 구도로 확장되지는 않는다.

결국 전망 이론의 결론은 두 풀이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가 처한 재무적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해답을 고르는 문제인 셈이다.

정보이론의 관점

정보이론을 통해 보면 이 게임은 정보 비대칭이 깔려 있는 수싸움, 즉 주최 측과 참가자의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정보 비대칭과 자유의지

이 게임은 구조적으로 참가자가 질 수밖에 없다. 참가자는 주최자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그 과정을 일체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최자가 사전에 예측을 했든 실시간으로 결과를 조작했든, 참가자가 직접 상자를 열기 전까지 '관찰 불가'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양측의 정보 엔트로피 차이가 압도적이며, 그만큼 참가자가 주최자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여지가 좁아진다.

주최자와 참가자가 대화한다고 상상하면 이 구조가 선명해진다.

참가자: 평소 같으면 A를 가져가지 않았겠지만, 아마 너는 내가 평소에 A를 가져가지 않을 만한 성격이라는 것을 알고 있겠지. 고로 나는 A를 가져가겠다! 주최자: 저는 당신이 그러한 돌발성 행동을 할 것이라는 것까지 예측하였지요. 참가자: ...라고 생각했겠지만, 네가 그것까지 계산에 넣었을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에 평소대로 A를 가져가지 않겠다. 주최자: 역시 당신은 제 손바닥 안입니다.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제가 예상했던 두 번째 대사를 하시는군요.

아무리 몇 수 앞을 내다보려 애써도 주최자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최자를 이길 수 있다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지 않고, 애초에 주최자의 예측을 상회할 지능을 가진 사람에게 이런 게임을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으면 이미 패배했음을 인정하고 100만 달러라도 챙기기 위해 상자 B만 고를 수도 있고, 미래예지나 라플라스의 악마, 완벽한 독심술이 존재하지 않음을 지적하며 게임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다. 이 관점의 결론은 정보 비대칭이 곧 선택 비대칭으로 직결되며, 자유의지는 정보 엔트로피에 따라 상대적으로 제한된다는 것이다.

기억이 지워진 2회차

정보이론 쪽 논의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변형도 있다. 참가자가 이미 1회차에서 이 게임을 플레이한 적이 있고, 이후 주최자가 참가자의 기억을 지운 뒤 1회차의 선택에 따라 상자 B의 내용물을 정했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참가자는 기억이 지워진다는 사실도, 지워졌다는 사실도 모르므로 1회차와 똑같은 추론을 거쳐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이 경우 주최자는 참가자의 선택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으며, 완벽한 예측이 존재할 수 없다는 반론이 무력화된다. 물론 상자 B의 내용물이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그대로다.

설계자의 오류

그러나 예측 범위를 벗어나는 행동을 함으로써 주최자를 패배시킬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상자 선택 외의 행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단서도 주어지지 않았고, 그렇기에 주최자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가 어떻게든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 설계자의 오류(Designer Error)라 하여 사고 실험에서도 중요하게 다룬다. 제시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선택을 본인이 하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져 결정하면 독심술을 가진 점성술사도 결과를 알 수 없으므로 승률이 50%가 된다. 물리적 주사위가 아니라 난수 생성을 이용해도 되며, 특히 양자난수는 예측 가능성이 물리학적으로 원천 봉쇄된다.
  2. 주최자에게 상자 B를 열게 한다. 상자 B의 액수는 열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협박 등의 수단으로 내용을 확인시키면 확실한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다. 다만 이쯤 되면 사고 실험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건이 된다.
  3. 상자 A의 돈만 옮긴다. 상자 A에서 돈을 꺼내 상자 B에 넣고 상자 B만 가져가면, 상자 A 자체를 가져간 것은 아니므로 두 상자의 돈을 모두 취득할 수 있다.

이런 행동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예측을 점성술사에게 요구하므로, 역으로 점성술사 쪽에 정보 비대칭을 안겨 줄 수 있다. 점성술사가 이런 행동까지 예측했다 해도 논변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예측을 하는 순간 그에 대한 새로운 파훼법이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뉴컴의 역설은 "그런 예측자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예측자가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 단계에서 이미 정지 문제를 비롯한 각종 프레임 문제에 가로막힌다. 경우의 수를 고갈시키는 등 특수한 방법으로 점성술사가 이길 수는 있어도, 일반적인 경우에 항상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관점에서는 상대적인 자유의지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결론이 도출되며, 나아가 게임 이론적으로 보아 뉴컴의 역설이 변수가 완전히 통제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에서 발생한 역설이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상자 선택 외에는 아무 행위도 할 수 없다"는 거짓 딜레마, 즉 가두기 규칙이 불문율을 만들고 그것이 사고 실험의 본질적 이해를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사고 실험의 전제 범위를 지적하고 그 바깥으로 나가 문제를 푸는 시도는 흔한 편으로, 트롤리 딜레마에서 제3의 선로를 그려 모두를 구하는 해법이 대표적이다.

현실에서 대응되는 사례

관찰할 수 없는 상대가 이미 결과를 정해 두었고, 그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행동이 제약되는 구조는 현실에서도 반복적으로 관찰된다는 해석이 있다.

감정 노동과 카스하라

갑질 등으로 인한 감정 노동자의 정신 이상 역시 뉴컴의 역설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 있다. 감정 노동자는 회사 내규나 인사 평가 때문에 손님을 대하는 행동에 제약이 걸리기 때문이다. 오모테나시 문화의 하나인 실명 명찰을 악용한 카스하라2가 대표적인 예로, 손님은 실명 명찰을 통해 직원의 신상을 파악할 수 있는 반면 직원은 손님의 신상을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정보 불균형이 심화된다. 카스하라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과거 실명 명찰을 사용하던 일본 기업들이 사진 폐지, 가명화 등의 방식으로 실명 명찰을 없애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반대로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상감마마 티셔츠는 뉴컴의 역설을 역이용한 사례로 언급되며, 곤룡포의 위압감이 그 수단에 해당한다.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악용한 공갈

점유이탈물횡령죄를 악용한 공갈은 카스하라보다도 뉴컴의 역설에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사례로 꼽힌다. 가해자가 미끼를 두고, 그 미끼를 가져가는 사람을 점유이탈물횡령죄로 몰아 협박하는 방식이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계속 관찰할 수 있는 반면 피해자는 가해자를 관찰할 수 없거나 관찰하더라도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자를 여는 쪽과 지켜보는 쪽의 구도가 그대로 재현된다.

시장의 정보 비대칭

주식 시장과 코인 시장 역시 뉴컴의 역설이 잔혹하게 적용되는 사례로 언급된다. 개인 투자자가 가진 정보량은 시장 전체의 정보량에 비해 한없이 부족하며, 그로 인해 개인의 투자는 대부분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그친다는 것이다. 여기에 프로그램에 의한 고빈도 매매(HFT, high frequency trading)까지 더해지면 개인이 대응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이 때문에 적어도 호가와 관련해서는 시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넘어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가 있다. 나아가 이런 흐름을 뒤집을 수 있는 주체는 오너나 정치인 같은 권력자뿐이므로, 결국 시장의 흐름보다 권력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같은 이유로 정보 비대칭이 거래를 왜곡하는 레몬 마켓에도 동일한 구조가 적용된다.

2025년 반도체 대란도 같은 맥락에서 거론된다. 그래픽 카드 채굴 대란을 비롯한 과거의 대란들도 그랬지만, 2025년 대란의 경우 B2B와 B2G 거래가 급성장하면서 B2C 물량이 사라졌고, 전 세계적 현상이라는 이유로 업자들이 공급을 더 틀어막았다는 서술이 있다. 부품 생산 능력도 유통 역량도 없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정보가 전혀 없으므로, 정보를 쥔 업자들의 물량 조절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언이 행동을 바꾸는 사례

로코의 바실리스크는 예언 자체가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례로, 자기실현적 예언이나 가스라이팅은 정보 통제를 통해 상대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사례로 각각 분류된다.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꽃놀이패나 "모르면 맞아야죠" 같은 표현과도 일맥상통하는데, 정보의 양이 적으면 선택의 여지가 좁아져 상대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6 FIFA 월드컵 조별리그

2026 FIFA 월드컵 조별리그는 히혼의 수치와 겹친 사례로 언급된다. 특히 조 3위 간의 순위 싸움이 치열했는데, 나중에 경기를 치른 J조부터 L조는 나머지 9개 조의 최종 결과를 모두 확보한 상태에서 경기에 임한 반면, 일찍 조별리그를 마친 A조부터 C조는 그 결과를 알지 못한 채 경기를 치러 정보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였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3차전에서 패배한 뒤 콩고민주공화국과 이란에 밀려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였다. 반면 B조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3차전 당시 승점 1점에 그쳐 있던 상황에서 카타르를 꺾고 승점 4점으로 조별리그를 통과하였다.

여담

마틴 가드너는 이 문제를 대중적으로 소개한 사람 중 하나다. 대한민국에도 출판되어 널리 알려진 『패러독스의 세계』(윌리엄 파운드스톤)에도 이 역설이 소개되어 있으며, 가드너는 이 패러독스에 분명한 해답이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문제를 널리 퍼뜨린 당사자도 답은 모른다는 뜻이다.

가드너가 1973년에 이 문제를 처음 소개했을 때에는 일반 독자는 물론 학자들까지 관심을 보여 많은 편지가 도착했다. 이때 일반 독자 중에서는 상자 B만 선택한다는 해답 쪽이 두 상자를 모두 선택한다는 해답보다 약간 더 많았으나, 문제 자체가 논리적 모순이라는 편지 또한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가 공개된 직후부터 이미 세 갈래의 반응이 나와 있었던 셈이다.

각주

  1. 지배 원리는 쉽게 말해 상위호환이 존재할 경우 하위호환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다.

  2. カスハラ. 영어 Customer Harassment를 줄인 일본어 조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