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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개요

갈등(葛藤, conflict)은 개인이나 집단이 서로 다른 목표·이해·가치·정서를 가진 탓에 상대의 이익과 충돌하는 방향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이다. 쉽게 말해 사람과 사람,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생기는 마찰 상태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보면 된다. 한자로는 칡 갈(葛)과 등나무 등(藤)을 합친 말이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감아 올라가는 두 덩굴이 얽혀 풀기 어려워진 모습에서 왔다고 설명된다.

주목할 부분은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20세기를 지나며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한때 조직에서 도려내야 할 병으로 취급되던 것이 지금은 관리 대상으로 위치가 옮겨졌다. 이 문서는 갈등의 발생 조건, 유형 분류, 고조 과정, 관리 방식 순으로 다루며, 인용된 수치는 2026년 8월 기준이다.


상세

갈등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하나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나 이해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사자가 그 사실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인식되지 않은 이해 충돌은 갈등으로 표면화되지 않으며, 반대로 실제로는 겹치지 않는데 겹친다고 믿으면 갈등은 그대로 발생한다. 갈등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지각(perception)의 문제로 분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원이 되는 덩굴 비유를 조금 더 밀고 나가면 구조가 잘 보인다. 두 덩굴이 같은 지지대를 타고 오를 때 처음에는 높이가 달라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 그러나 지지대의 굵기는 정해져 있으므로 위로 갈수록 남는 자리가 줄고, 어느 지점부터는 한쪽이 감아 놓은 자리 위에 다른 쪽이 감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각자 위로 자라려는 힘이 그대로 상대를 조이는 힘으로 바뀐다.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두 당사자가 같은 방향을 향할 때 갈등이 급격히 커지는 구조가 정확히 이 모양이다.

발생 원인은 대체로 네 갈래로 정리된다.

  1. 욕구의 좌절
  2. 목표의 차이
  3. 가치관의 차이
  4. 한정된 자원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차이

갈등관의 변천

조직행동론에서는 갈등을 보는 관점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1. 초기의 전통적 관점은 갈등을 조직의 병리로 보았고, 관리자의 책무는 갈등 요소를 찾아내 제거하는 것이었다. 20세기 중반의 인간관계론적 관점은 두세 사람만 모여도 갈등은 생긴다는 쪽으로 물러섰다. 부정적 현상이기는 하나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상호작용론적 관점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갈등이 거의 보고되지 않는 집단을 들여다보니 조화롭고 평온하기는 하지만 정적이고 보수적이며 변화를 꺼리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통제 가능한 수준의 갈등을 새로운 아이디어의 원천이자 응집성의 촉진 요인으로 본다. 갈등 수준이 지나치게 낮은 부서에 인사 담당자가 일부러 이질적인 구성원을 배치하는 식의 개입이 실제 실무에서 쓰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하는 쪽 입장에서는 그냥 인사이동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갈등은 안건과 의견과 가치관의 충돌이다. 뒷담화, 인신공격, 파벌 싸움 같은 형태는 어떤 관점에서도 순기능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유형과 분류

개인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내적 갈등은 쿠르트 레빈(Kurt Lewin)의 분류를 기본으로 삼는다2.

  • 접근-접근 갈등: 두 선택지가 모두 매력적일 때. 쉽게 말해 행복한 고민이다. 물론 당사자는 대단히 진지하다.
  • 회피-회피 갈등: 둘 다 싫은데 하나는 반드시 골라야 할 때.
  • 접근-회피 갈등: 하나의 선택지에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함께 붙어 있을 때.
  • 이중 접근-회피 갈등: 두 선택지가 각각 접근-회피 구조를 가질 때. 정리해고 결정이나 신규 시장 진출 판단처럼 되돌릴 수 없는 의사결정이 여기 속한다.

집단 차원으로 올라가면 축이 달라진다. 대한민국에서 자주 거론되는 축만 꼽아도 이념, 계층, 노사, 지역, 세대, 성별, 종교로 나뉘며, 각 축은 원인도 해법도 서로 다르다. 하나의 처방으로 묶어 다룰 수 없다는 뜻이다.

고조의 9단계

오스트리아의 갈등 연구자 프리드리히 글라슬(Friedrich Glasl)은 갈등이 악화되는 과정을 3구간 9단계로 정리했다3. 단계가 올라갈수록 필요한 개입의 강도도 달라진다.

구간 단계별 양상 필요한 개입
승-승 (1~3단계) 긴장 → 논쟁 → 말 대신 행동 당사자 간 대화, 제3자의 조력
승-패 (4~6단계) 편 짜기 → 체면 깎기 → 위협 제3자의 적극적 조정·중재
패-패 (7~9단계) 제한적 타격 → 상대 제거 → 공멸 강제력을 가진 제3자의 개입

이 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3단계와 4단계 사이다. 3단계까지는 대화가 남아 있지만 4단계에서 편이 갈리는 순간 갈등의 성격이 바뀐다. 그 시점부터는 사안 자체보다 '누가 누구 편인가'가 쟁점이 되며, 조직 단위에서는 개인 간 갈등보다 해결 비용이 훨씬 커진다.

한편 7단계 이후는 이름부터 '패-패'인 데서 알 수 있듯 승자가 남지 않는 구간이다. 기록상 이겼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도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크며, 9단계는 상대를 무너뜨리는 일이 자기 안전보다 우선순위가 되는 상태다.

갈등 관리의 다섯 유형

토마스와 킬만(Thomas & Kilmann)은 갈등 당사자의 대응 방식을 자기 주장의 강도와 협조성의 정도라는 두 축으로 나누어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4.

  • 경쟁형: 자기 주장은 강하고 협조성은 낮다. 신속한 결정이나 원칙을 지켜야 할 사안에서 유효하나, 상대도 경쟁형이면 벼랑 끝 대치로 흐르기 쉽다.
  • 양보형: 관계 유지를 우선한다. 사안의 중요도가 낮거나 상대가 명백히 옳을 때 합리적이지만, 반복되면 불만이 누적된다.
  • 회피형: 사안 자체를 다루지 않는다. 감정이 격해진 시점에 시간을 버는 용도로는 쓸모가 있으나 근본 해결은 되지 않는다.
  • 협력형: 양쪽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안을 찾는다. 가장 이상적이지만 시간과 신뢰가 많이 든다.
  • 타협형: 서로 절반씩 양보한다. 시간이 부족할 때 현실적인 선택지다.

다섯 유형에 우열은 없다. 협력형이 언제나 정답이라면 분류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며, 관건은 사안의 중요도와 남은 시간에 맞는 방식을 고르는 데 있다.

대한민국의 갈등 수준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의 「2025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조사 대상 8개 항목 중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가장 높았던 항목은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갈등이었다5.

갈등 항목 인식률(%) 비고
보수와 진보 80.7 8개 항목 중 1위
빈곤층과 중·상층 74.0 경제적 격차 축
근로자와 고용주 69.1 노사 관계 축
개발과 환경보존 60.4 가치 충돌 축
노인층과 젊은 층 57.9 세대 축
남자와 여자 51.3 8개 항목 중 최하위

8개 항목이 모두 과반을 넘겼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념 갈등 인식률은 직전 조사의 77.5%에서 3.2%포인트 올랐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25년 사회통합 실태조사」에서도 이념 갈등이 4점 만점에 3.2점으로 가장 높았으며, 갈등의 원인으로는 이해 당사자들의 각자 이익 추구(26.3%)와 상호 이해 부족(21.8%)이 상위에 꼽혔다6.

비용 측면의 추정치도 있다. 국무조정실이 발주한 연구용역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사회갈등비용은 약 2,326조 6,000억 원, 연평균 232조 7,000억 원으로 추산되었다7. 2023년 명목 국내총생산의 약 10.4%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이런 추정치는 모형과 가정에 따라 값의 폭이 크게 달라지므로, 갈등이 사라지면 그만큼의 돈이 그대로 생긴다는 의미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오해와 진실

갈등이 하나도 없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다. 조용한 회의실은 합의가 잘 되었다는 신호다. 상호작용론적 관점에서는 갈등이 보고되지 않는 집단을 오히려 점검 대상으로 본다. 이견이 없는 것인지, 이견을 말할 수 없는 것인지는 겉으로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갈등지수 OECD 3위"는 최신 수치가 아니다. 널리 인용되는 이 순위는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가 2021년에 발표한 것으로, 기준 연도는 2016년이다8. 같은 자료에서 갈등관리지수는 30개국 중 27위였는데, 갈등 수준보다 관리 역량 쪽 순위가 더 낮았다는 점이 본래의 논점이었다.

레빈(Lewin)의 분류를 '레빈(Levin)'으로 적는 경우가 많다. 접근-회피 갈등 개념을 제시한 인물은 독일 출신 심리학자 쿠르트 레빈(Kurt Lewin)이며, 철자는 Levin이 아니라 Lewin이다. 인터넷 자료에 오기가 널리 퍼져 있어 검색으로 확인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여담

  • 갈등은 본래 불교 용어에 가까웠다. 선종 문헌에서 葛藤은 수행자를 옭아매는 번뇌, 특히 언어와 문자에 얽매여 참뜻에 이르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고, 이런 상태를 갈등선(葛藤禪)이라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 어원 설명에서 "칡은 왼쪽,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는다"는 문장이 흔히 따라붙는데, 어느 쪽이 왼쪽인지에 대한 서술이 자료마다 엇갈린다. 두 덩굴의 감는 방향이 다르다는 점까지는 공통되나, 방향을 특정한 서술은 그대로 옮기기 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 앞서 언급한 갈등비용 연구에서 1990년부터 2022년까지 누적 비용 중 약 75%가 이념 갈등에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되었다7. 발생 빈도로는 전체의 6% 수준인 유형이 비용의 4분의 3을 차지한 셈이다.
  • 문학에서 갈등은 서사를 굴리는 동력으로 다뤄지며, 인물과 인물, 인물과 사회, 인물과 운명, 인물과 자연의 외적 갈등, 그리고 인물 내면의 갈등으로 나뉜다. 갈등 요소를 거의 배제한 작품이 늘어난 시기에는 오히려 갈등 구조가 뚜렷한 옛 작품이 재평가되는 현상도 관찰된다.

각주

  1. 갈등에 대한 전통적·인간관계론적·상호작용론적 관점 구분은 조직행동론 교과서의 표준 분류다. Stephen P. Robbins & Timothy A. Judge, 『Organizational Behavior』, 갈등과 협상 단원.

  2. Kurt Lewin, 『A Dynamic Theory of Personality』(1935)에서 제시된 세 가지 갈등 유형. 이중 접근-회피 갈등은 이후 닐 밀러(Neal E. Miller)의 연구에서 확장되었다.

  3. Friedrich Glasl, 『Konfliktmanagement』(1980)에서 제시된 9단계 갈등 고조 모형(Neun Stufen der Konflikteskalation).

  4. Kenneth W. Thomas & Ralph H. Kilmann, 『Thomas-Kilmann Conflict Mode Instrument(TKI)』(1974).

  5. 국가데이터처, 「2025 한국의 사회지표」, 2026년 3월 31일 발표. https://www.mt.co.kr/economy/2026/03/31/2026033108363692931

  6. 한국행정연구원, 「2025년 사회통합 실태조사」, 2026년 7월 7일 발표. 2025년 8~9월 전국 19세 이상 8,305명 대상.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30074087

  7. 국무조정실 발주,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비용분석」, 2024년 4월 보도. 정부가 공식 연구용역으로 갈등비용을 추산한 첫 사례다. https://m.edaily.co.kr/News/Read?newsId=01105366638861040 2

  8. 전국경제인연합회, 「OECD 국가 갈등지수 비교」, 2021년 8월 19일 발표, 2016년 기준. 한국 55.1점으로 30개국 중 3위, 갈등관리지수는 27위. https://www.khan.co.kr/article/202108191618001